The Order of Time: 유르겐 스탁, 홍순명

15 November - 24 December 2024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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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아트는 서울에서 11월 15일부터 12월 24일까지 유르겐 스탁(Juergen Staack)과 홍순명의 2인전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개최한다. 우리는 시간 속에 존재하고 시간을 통해 그 존재를 증명하며 살아간다. 우리의 경험과 기억을 축적하고 변화시키는 시간은 예술 철학 영감의 원천이자 인간 존재의 중심 주제로 오랫동안 탐구되어 왔다. 이탈리아 태생의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본인의 저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The Order of Time, 2017)에서 시간이 순서대로 흘러갈 것이라는 전형적인 통념을 전복하고 시간의 상대성, 비선형성, 개별성을 제안한다. 즉 시간은 원초적 질서가 아니라 사건 간의 관계이자 그 관계로부터 발생하는 경험의 양상으로 우리의 인식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본 전시는 두 명의 작가가 매체 고유의 특성을 바탕으로 시간의 의미를 어떻게 직조하는지에 주목하면서 우리의 인식 깊은 곳과 접속되는 지점을 감각하고자 한다.

 

유르겐 스탁의 작품에서 시간은 생태적 존재이다. 작가는 시간의 동정(動靜)에 따라 변하는 것들에 대한 소고를 담는다. ‘모아레(Moiré)’는 기계 모니터 화면에 특정한 패턴이 겹치며 발생하는 찰나의 시각적 오류를 의미한다. 그는 이러한 간섭 현상을 미적 도구로 치환하기 위해 나무 프레임 안에 패브릭을 배치하고 뒤에서 빛을 투사하여 시각적 착란을 일으킨다. 흔히 왜곡된 이미지로 간주되는 이 순간을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으로 제시함으로써 변칙성과 일시성의 아름다움을 탐구한다. 모아레가 기계 시스템 속 변칙적인 상(象)의 조형성을 짚어냈다면, ‘솔라 카피(SOLAR COPY)’ 시리즈는 생태계 속 변이를 시간 안에 각인한다. 몽골 고비 사막에 등장한 변종 식물들의 그림자를 시아노타입 기법으로 기록한 이 작업은 지구 온난화에 따른 심각한 환경 문제를 은유적이고 섬세하게 기록한 시간의 흔적이다. 본 전시에서 유르겐 스탁이 제안하는 직접적인 시간의 경험은 ‘라이트 스케치(Light Sketch)’를 통해 보다 명확하게 등장한다. 라이트 스케치는 태양 빛이 사물을 비추어 생긴 그림자를 통해 시간의 이동을 추측할 수 있게 한다. 꽃병 앞에 펼쳐진 노트 위에 그림자가 그림을 그리는 이 시적인 순간은 아주 잠시만 머무르고 이내 사라지지만 찰나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순간 아름다움은 우리의 인식 속에 영원으로 존재하게 된다.

 

한편 홍순명은 시간을 사건들의 집합으로 바라본다. 그는 회화를 평면성에 한정하지 않고 화면 구성의 변주를 통해 다양한 독해를 끌어낸다. 홍순명의 ‘저기, 일상’은 동시간대 서로 다른 장소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본인이 마주하는 평범한 일상의 단편을 사진으로 담아 화면에 옮기고 같은 날 인터넷과 외신을 통해 접한 지구 반대편 장소의 재난 이미지 및 사건의 현장을 동일한 화면에 중첩한다. 그리고 중첩의 지점에 마스킹 테이프를 붙이고 떼어내는 작업을 통해 화면의 행간을 입체적으로 활용하면서 모호해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감각한다. 홍순명의 회화에서 시간은 공통된 지점을 공유하는 듯하지만, 그것을 경험하고 인식하는 관계들은 첨예하게 갈라진다. 예컨대 ‘A국 이야기’는 해결되지 않은 시간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지역의 노예가 바다에서 노동하는 모습을 담은 현대의 사진과 본인이 바다를 거닐던 어느 여유로운 날의 사진을 중첩된 회화로 표현한다. 바다라는 공통된 장소에서 보낸 서로의 시간은 완벽하게 분리된 차원의 두 현실을 마주하게 한다. 작가가 조각을 대하는 태도도 이와 맥락을 함께한다. 홍순명의 조각은 사건이 발생한 장소에 떠도는 버려진 오브제들로부터 탄생한다. 작가는 수집된 여러 오브제를 붙여 하나의 입체로 만들어 멈춘 시간에 새 숨을 불어넣는다. 이렇듯 홍순명은 결코 잊혀서는 안 될 사건을 스스로에게 상흔처럼 남겨 그 시간을 기록하고 기억하고자 한다.

 

시간은 궤적마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여 그 본질을 명확히 정의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인식이 존재하는 한 시간은 결국 우리 삶에 뚜렷하게 흐르고 있다. 전시라는 공통된 시간을 공유하는 두 명의 작가가 그려낸 서로 다른 궤적을 따라가며, 그들이 전하는 시간의 본질을 깊이 있게 경험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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