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규어 그라운드: 노보, 모모 킴, 송지혜
우리는 사물을 지각할 때 시각적 요소들이 이루고 있는 세력 관계를 우세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분화시켜서 파악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감각을 통해 인식한 주위의 모든 정보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이미지만을 선별한 뒤 저장하는 이 같은 현상을 게슈탈트 심리학(Gestalt psychology)에서는 피규어-전경, 그라운드-배경이라는 지각의 원리로 설명한다. 서정아트 부산에서는 노보, 모모킴, 송지혜가 정의한 피규어와 그라운드의 유형을 통해 자유자재한 시선의 묘의를 경험해 보고자 본 전시를 기획했다.
노보(b.1982)는 본인의 추억이 영글어있는 알록달록한 물건으로 평면 실험을 거듭한다. 그는 도쿄 시내와 LA 뒷골목 곳곳을 넘나들며 자동판매기 속 미니어처부터 이국의 우체국 소포 박스까지 작가의 레이더에 가장 흥미롭게 감지되는 문화의 파편들을 찾아 수집한다. 그렇게 손에 닿은 오브제는 검정 바탕에 시각의 서열화를 피해 정면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쌓이고 펼쳐진다. 선명한 톤의 노란 메달과 케첩, 럭비볼의 다채로운 빨간 오브제로 제작된 불쑥 솟은 기둥은 작가 자신과 우리에게 수여하는 트로피를 형상화한다. 추억과 욕망으로 지탱된 트로피는 기억의 지속성을 보장해 주는 생생한 조각으로서 기능한다.
가장 친숙한 일상의 오브제는 모모 킴(b.1992)의 아이패드에서 부드러운 파스텔 색과 매끈한 드로잉 선의 리듬을 타며 자리한다. 누군가의 공간 속에서 뿌연 배경으로 존재하던 이미지들은 핑크빛 뽀얀 히어로가 되어 산뜻한 정체성을 회복한다. 꽃병, 손거울, 스탠드 등 인형은 각각의 형상과 운율을 찾아 유기적인 구성을 이루는데, 이러한 결과물은 객관적이라기보다 자신의 관찰 결과인 ‘자기 시각’을 그려낸 감각적 고백이다.
단순한 일상의 겉모습만이 아닌 개인의 서사까지도 담으려 한 송지혜(b.1990)의 작업에는 일상과 예술을 대하는 진지한 자의식이 담겨있다. 둥글한 부피감으로 묘사된 얼굴은 재현을 위한 형태보다 신비주의적 고뇌와 같은 내면세계를 우선시 한 모습이다. 길고 느슨한 호흡으로 연결되는 드로잉은 전형적인 형태에 대한 순수한 사유를 일깨우고 자극한다. 린넨에 획의 움직임이 드러나도록 거칠게 칠해진 푸른 화장실 바닥과 뿔이 난 소녀의 두툼한 볼을 가르며 흘러내리는 물감 한 줄기가 주는 시각적 즐거움을 통해 삶의 비밀스러운 구석을 끌어낸다.
별개의 대상들은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피규어 또는 그라운드로 자유자재하게 활용되고 창조적으로 재배치된다. 이러한 요인은 즉각적으로 에피소드를 경험하는 것뿐만 아니라 시간의 궤적이 개입된 시선에서 유래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평면은 집합적 기억의 저장소로서 기능한다. 이렇게 우리는 진화하는 오브제를 마주하며 생생하게 만져질 듯한 현존을 경험하고, 진지하게 취급되지 않았던 일상의 파편에 효과적으로 집중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