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husiasm: A Waking Mountain: 이춘환
이춘환, 전통과 혁신
《Enthusiasm : a waking mountain》은 이춘환 화백이 지난 20년간 지속해온 산의 기운 연작의 최근 신작들을 두루 살피는 기획전이다. 그는 1988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매일 규칙적으로 작품에 몰두하며 묵을 중심으로 한 수묵화부터 아크릴을 주재료로 한 캔버스 작업까지 작가의 목표와 작품이 나아갈 길을 정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산의 기운은 그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미학을 계승하는 동시에 작가의 전체 작품세계를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시리즈로 꼽을 수 있다. 그는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한 198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매우 체계적으로 작품 제작의 단계를 밟아왔다. 이러한 열의와 탐구는 작가 자신에게 필요에 의한 진전의 과정이었을 것이며, 큰 흐름에서는 더욱 순수한 추상으로 이르는 과정이었다.
캔버스에 아크릴을 주재료로 사용해 산의 기운을 표현하는 방식은 초창기 전통적인 수묵화 작업 이후 점진적으로 변혁을 맞이해왔다. 지금껏 이 화백의 산의 기운 연작은 세부 내용을 덜어내고 단순화시킨 색, 면으로 산의 기운을 표현한 조형의 힘으로써 우리에게 자연의 정수를 느끼게 했다.
이번 기획전의 근작들 또한 형태와 색채에 대한 작가의 헌신적인 탐구로 더욱 정제된 선과 면, 엄선한 색으로 기본적인 조형 요소들이 긴장감 속에 모종의 균형감을 이루며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같은 빨강 계열의 작품에서도 선홍, 다홍, 진홍 등 미묘한 차이를 지니며 기본 삼원색을 기반으로 하되 변주가 구사된 색들이 조화롭다. 장엄한 산맥과 떠오르는 태양을 암시하는 분홍빛 하늘은 이춘환 화백의 조형언어를 통해 직접적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에 다가가게 한다.
특히 일필로 제작된 산의 기운을 통해 일상적으로 만나는 자연의 요소들을 더욱더 회화적 언어로 추상화하는 화백의 집요한 실험 과정을 엿볼 수 있다. 형태를 점차 단순화시켜 큰 화면에 사방 면의 산이 보이는 시점의 조감도를 펼쳐내 더욱 자신감 넘치게 자연의 모습을 담아내거나, 직접 한지를 제작하여 요철 있는 표면의 재질감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으로 작업한 신작은 앞으로 작가의 회화 언어의 발전에 어떤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 인지 주목된다.
작풍의 전환기를 겪으며 유사한 조형과 같은 계열의 색에서도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며 거대한 자연의 힘을 표현한 산의 기운 시리즈의 현재와 앞으로의 도달할 수 있는 작가의 경지를 이번 기획전을 통해 가늠해보려 한다.
2023년 미술의 시대적 지형도 속 이춘환 화백의 신작을 두루 살피는 이번 전시는 작가의 작품 세계 속 선택과 방향 전환에 따라 변화하는 작품의 궤적을 쫓아가는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