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야성(不夜城): 박지은
박지은 작가는 강렬한 먹선과 함께 도시의 야경을 담아내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검은 묵면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 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도시의 야경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야경들은 서울, 뉴욕, 파리, 싱가포르 등 다양한 도시의 경관이며, 각자의 랜드마크로 이들이 실재하는 풍경임을 식별할 수 있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듯, 작가에게 있어 여행은 영감을 얻는 주요한 수단이 된다. 작가는 여행 중 우연히 마주친 풍경, 순간, 분위기를 캔버스 위에 담아내는데, 사진으로 찍은 듯한 사실적인 야경에서는 강렬한 묵면의 프레임을 통해 마치 잔상처럼 한순간에 지나가는 듯한 운동감을 느낄 수 있으며, 이는 여행지에서 느낀 순간적인 감정을 관람자에게 하여금 마치 직접 겪은 것과 같이 기억 저편에서 끌어온 경험인 것처럼 인식하게 한다.
박지은이 사용하는 주된 재료는 변화하는 감정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속도에 혼란스러움을 느낀 작가는 한 발 뒤로 물러나 세상을 관조하려 한다. 작가는 관조의 수단으로 여행을 택했는데, 그 누구도 아닌 익명의 상태로 세상 곳곳을 누비며 작가는 여러 감정의 변화를 느꼈다. 그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작가는 세상 어디에서도 변함없는 고요한 밤의 건물과 풍경, 지붕과 불빛에서 위로를 얻어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탐구하는 여러 감정 중 특히 대조적인 감정의 변화에 주목하였다. 차오르다가도 텅 비고, 쓸쓸하다가도 황홀해지는 감정의 높낮이를 통해 영감을 얻는 박지은은 작품 그 자체로 대조를 표현한다. 한밤중에도 해가 떠 있는 것처럼 밝다는 의미의 ‘불야성(不夜城)’처럼 본 전시는 작품의 이런 대조적 성격에 주목하는데, 언뜻 보면 과감한 먹선으로만 이루어진 듯한 작품의 내부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안에 야경의 불빛들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불야성’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역설적이다. 밤이지만 낮처럼 밝으며, 잠을 자는 고요한 시간이지만 사람들이 불을 켜고 모여 활기차기도 하다. 언뜻 차갑고 쓸쓸하게 느껴지는 밤의 야경은 사실 그 속의 개인들이 따뜻한 불빛을 켜야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이 또 하나의 대조이기도 하다.
박지은 작가의 작품은 과감함과 세밀함, 차가움과 따뜻함, 고요와 활기가 공존하는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아낸다. 이처럼 상반된 것들의 미학은 언제나 우리를 매료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