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비평가, 독립 기획자 발렌티나 부치
합(合)
[철학 개개의 관념, 개념, 판단 따위를 결합시켜 새로운 관념이나 개념을 구성하는 일]
인간을 변증법적인 존재로 간주하는 것은 가장 오래된 시각일 것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인 욕망에 주도되고, 이성에 의해 형성되며, 종종 이원론적 도전으로부터 파생되는 융합의 상태에 도달한다. 인간 정신의 두 개의 차원, 그리고 이 이분법을 해소하기 위한 긴장감은 때로는 갈등으로, 혹은 조화로운 가능성으로 예술의 역사에 가장 다분한 영향을 끼쳤다. 피정원의 작업은 ‘해소’의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각 차원의 의미론적 영역과 그에 대응하는 미적 영역의 공존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작가는 자아가 배회하다 네거티브 스페이스의 순수 추상성에 흡수되는 지점인 ‘검정의 요소(the black component)’와 의식의 발단과 생성 그리고 성장 과정의 경로인 ‘인텐스 마티에르(intense matière)’를 통해 이 둘의 개념을 정갈하고 명백하게 이분화하는데, 이는 ‘구별’에 대한 절제된 필요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아마도 무의식적인 융합을 위한 열망이 역동적으로 잘 드러나는 것은 바로 마티에르가 균열, 레이어링, 집합되는 지점이다.
이 두 요소를 결합할 시, 작가는 스스로에 대한 기억뿐만 아니라 타인의 기억을 현재진행형으로 설명하는데,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본인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관객의 시선이 투입된 ‘융합’의 과정은 이분법적 결합을 병합의 행위로 변환한다. 자크 라캉1) 은 예술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해석으로 그림을 보는 행위(시선)는 예술가와 관객 사이의 조우를 허용하고 예술가의 부재가 붓질이라는 행위를 통해 표현되어 관객의 존재를 뚜렷하게 하는 상충적 역할을 수행하며 "말하는 자, 나는 그대 자신이 결여한 대상과 그대를 동일시한다"2) 고 말했다. 피정원의 작품은 흑색과 마티에르가 만나는 순간 무의식이 자신의 동화(同化)를 마주하는 과정, 그리고 작품과 관객의 시선이 만나는 순간에 주체가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 즉 우리가 ‘합(confluence)’이라 표현할 수 있는 현상학적인 방법을 통해 그 의미를 생성한다. 즉, 인간의 이원론이라는 가장 오래된 딜레마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니체 사상적 ‘혼란(chaos)’을 시인하는 데 결여되지 않을 새로운 패러다임적 관점을 창조하는 데 나아가, 오히려 이 갈등을 해소할 ‘결의(resolution)’가 상정되는 순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피정원의 작품 속 ‘합’은 미적으로나 개념적으로나 피상적인 것들로부터 해방된 본질에 대해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기에 가능해진다. 그의 작품은 가장 근본적이고 원시적인 추상화로 표현되는 우리 바깥의 것에서 해방된, 부패하지 않은, 오히려 우리의 가장 순수한 지위를 보여주는 거울이자 기념비적 원형(archetype)을 탐구하려는 인류 그 자체의 열망의 개인적 그리고 집단적 상징이 된다. 이러한 성장의 길을 통한 ‘합’은 우리 자신의 고유성이 무의식, 기억, 감정의 유사성을 다루는 인류의 보편적 투쟁과 만나는 지점으로서 자리매김한다. 관객의 필요성은 미메시스(mimesis)를 메텍시스(methexis)로 발전시킨다. 즉, 피정원의 작품은 그것이 작품 혹은 관객, 또는 주체나 표현이든지 간에 ‘상반된 것’과의 조우에 의해 존재한다. 장-뤽 낭시 (Jean-Luc Nancy)의 말을 인용하자면, 피정원의 작품에는 "몸, 정신, 삶, 죽음, 인간과 신, 빛과 질감, 색과 곡선, 표현할 수 없는 것과의 표현과 같은 순간적인 상호 직조" 3) 가 존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끝이 전무한 이원론을 수용하는 순간, 시간성을 초월하는 매우 칸트적인 방식으로의 ‘무조건적인 자유’(unconditional freedom)를 만날 수 있는 종결점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아폴론적인 것 (Apollonian)과 디오니소스적인 것(Dionysiac)4) 을 향한 영원한 도전은 상생적 필요성에 대한 깨달음, 서로를 변화시키는 능력, 그리고 서로를 강화해 전체적으로 그들의 본질을 드러내는 발견의 과정을 통해 융합을 이룬다.5) 그렇기에 생성(生成)으로서의 ‘합’은 한없이 변혁적이며, 고대 그리스인들이 ‘기적적(Thaumaturgic)’6) 이라 칭하는 구원적 과정을 구현한 도스토옙스키적 아름다움 에 대한 이상을 연상시킨다.
1) Jacques Lacan (1995), Seminar XI: Lacan’s four fundamental concepts of Psychoanalysis, New York,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 Jacques Lacan in George Dimos (1987), A Liberating Use of Lacan's Analysis of Western Painting, Munich, GRIN Verlag, https://www.grin.com/document/366121
3) Jean-Luc Nancy (2005), The ground of the Image, New York: New York University Press. p. 118
4)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고대 그리스 문명에 빗대어 ‘아폴론적인 것’와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는 이분법적 개념을 제시하였다. ‘아폴론적인 것’은 아름다움과 질서를 상징하고,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혼돈이 지배하는 ‘숭고함(sublime)’에 대해 느끼는 원시적 반응 혹은 황홀감을 뜻한다. 니체는 이 상극의 조화가 가장 높은 형태의 예술과 비극의 근원지라 믿었다. 참고문헌: Friedrich Nietzsche (1994), The birth of tragedy, London: Penguin Classics
5) 니체의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대한 개념적 해석은 벤자민 베넷 (Benjamin Bennet)의 문헌을 참고하였다: Benjamin Bennet (1979), Nietzsche's Idea of Myth: The Birth of Tragedy from the Spirit of Eighteenth-Century Aesthetics, PMLA, Vol. 94, No. 3,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pp. 420-433
6) 고대 그리스 문헌에서 Thaumaturgia(θαυματουργία)라는 단어는 "기적을 일으키는" 물체나 마술사의 능력을 지칭한다. 해당 표현은 기독교에서 성인의 사역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으며 불교에서는 "신통"(神通 Jinzū)으로 통용된다.
7) 도스토옙스키는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중 하나인 <백치 (The Idiot)> (1869)를 통해 ‘선(Good)’, 혹은 기독교적인 용어로 ‘신(God)’의 개념을 포괄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미학적, 도덕적 영역에서의 예술과 아름다움의 구원적 속성을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