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망의 꿈속을 헤매며

미술평론가 앤디 세인트루이스

회화가 스토리텔링의 한 형식이라면, 사이먼 고는 비네트, 즉 소품문(小品文)의 대가다. 작가는 구상적 작업에 있어 완벽히 구체화된 허구보다는 스케치 단계의 시나리오로서 아직 실현되지 않은 내러티브를 다룬다. 이처럼 모호한 작품에 그가 통합하고자 하는 표현 범위는 등장인물의 이야기에 통찰력을 부여할 만큼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각적 정보를 생략하고, 불확실한 것으로 구분되는 꿈결 같은 몽상만을 자아낸다. 여기에는 해설, 갈등, 절정 또는 대단원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저 시간 속에 얼어붙은 일련의 고립된 순간이 지속해서 불확실한 상태에 놓여 있다.


디에게시스(diegesis)를 대신하여, 사이먼 고는 정동의 힘을 생성하는 시각적 모티프와 구성의 단서를 작업에 채워낸다. 때때로 이러한 장면은 감정 경험에 관한 직접적인 설명이 되나, 다른 경우에는 실루엣이나 몸짓의 흔적을 단순히 암시하는 것만으로도 로르샤흐(Rorschach)적 연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의 작품은 초현실적이면서도 설득력 있는 꿈속의 상황에서 자신을 발견할 만한, 그리고 이전과 다음의 일에 대해 인과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요원한 몽환적 감성으로 가득하다. 작가는 우리가 스누즈 버튼을 누르고 곧장 잠에 다시 빠져들 때, 즉 이미지가 우리의 상상력에 의해 가장 생생해지고 그로부터 야기되는 감정이 가장 본능적일 때 발생하는 의식의 경계 상태를 활용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배우이자 작가가 되어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들어가듯 나른한 불신의 유예 상태로 호사를 누린다.


사이먼 고는 전시 《Some Gorgeous Dream》에서 구상적 작품의 연극성을 확장하여 관람객으로 하여금 자아의 지배를 막고 원초아(id)가 미학적 도피를 할 수 있도록 한다. 2022년 작 은 수평선이 없는 널따란 남색의 세상에서 양식화된 구름을 배경으로 삼아 한 쌍의 인물을 묘사하는데, 이는 대표 영역의 시각적 진실성을 의도적으로 불안정하게 한다. 결정적으로, 작가는 관객이 하늘의 경치가 걸려 있는 금속 비계와 뒤에서 엿보는 듯한 일반적인 벽돌 벽을 발견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이 상상적 풍경의 환영을 파괴한다. 배경 위에 그려진 막과 벽돌 패턴은 모두 평평하게 쌓인 평면처럼 보인다. 이러한 효과는 구름으로 가득한 표면에 옅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머리 위 천장으로부터 주인공 및 그 주변 사이에 매달려 있는, 불규칙한 형태의 별 네 개 위 수직적 선에 의해 강화된다. 마지막으로, 캔버스 아래에서 떠오르는 구름 형태의 집합체는 유사한 그림자를 드러내는 각 인물의 하체를 가림으로써 환상을 완성해낸다.


사이먼 고의 인물 자체는 회화의 시각 논리와 일치하는 평면성을 표명하며, 인지된 깊이가 줄어듦으로써 그림에 구현된 물리적 독립체라기보다 종이 인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인식은 평면성을 방해하며 종이만큼 얇은 별과 동일한 무게로 떨어지는 그림자의 균일성으로 인해 더욱 깊어진다. 이때 본그림자의 유사성은 회화 작품 내 외부 광원의 존재를 암시한다. 마치 레이어를 평평하게 하고 시각적 요소 간 중간지대를 추론할 수 있게 하는 스포트라이트에 의해 전체 장면이 분명해지는 듯이. 그림자 윤곽을 드러내는 검은 물감의 무미건조한 은색을 감안하면, 은 전경, 배경, 인물이 모두 초현실적 설정을 강조하는 종잇장처럼 얇은 정면성을 지니며 거짓된 깊이의 인형극적 미학을 띠고 있다.


작품 전체에 걸친 그림자 활용은 늘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감정적 자기 성찰의 표현을 향한 사이먼 고의 회화적 전환에 대해 통찰력을 제공한다. 그의 작품은 여전히 평면의 미학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최근 작업은 거의 눈에 띄지 않더라도 점차 깊이의 요소를 통합하고 있다. 머리 위에 화려한 추상적 형태의 모빌을 두고 있는 두 인물의 옆모습을 중립적 흰색 배경에 묘사한 (2022)는 일견 초점 심도와 관련된 부분 하나 없이 온전히 2차원적인 것으로 보인다. 모빌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과 겹치는 곳에서 하나의 그림자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보다 면밀한 관찰이 요구된다. 이는 한 번 찾게 되면 더 이상 간과할 수 없게 되지만, 놓치기 쉬운 세부 사항이기도 하다. (2022)와 (2022)에서 중첩된 두 얼굴의 근접 묘사는 완전히 평평한 모습인데, 각각의 배경에 대해 균일한 크기의 근접 렌더링은 다시 평면으로 나타나며 뚜렷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입체감을 더욱 해체한다. 실제 공간을 차지하며 완벽히 구체화된 인물이었다면 배경과의 거리에 따라 그림자의 크기가 달라졌겠지만, 여기에서는 판지로 만든 듯한 평면적 존재감만을 드러낸다.


한 쌍의 인물들이 사이먼 고의 회화에 등장할 때마다 그들의 그림자는 항상 주변에 드리워진다. 그러나 서로의 몸에는 비치지 않는다. 이들은 평행한 차원에서 존재하며, 같은 공간을 점유하면서도 물리적으로는 격리된다. 그렇다면 이 회화가 그려내는 것은 상상 속 파트너와 함께하는 인물인가, 아니면 각자의 꿈에 등장하는 실제 인물인가?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 잠재의식에 의해 떠오르게 되는 대상처럼, 이들의 출현에는 휩쓸려가기 직전인 듯한 본질적 취약성이 내재하고 있다. 언제나 가까이 있지만 서로를 만지지는 않는 작가의 인물들은 순수한 욕망을 초월하지 못하고 실제 물리적 연결이 부재하는 상태에서 갈망을 지속한다. 우리가 꿈에서 사랑하는 이를 아무리 끌어안고자 하더라도, 품에 안긴 그의 따뜻한 손길과 신체의 감각을 그리워하며 항상 충족되지 못한 상태로 깨어날 뿐이다.

 

앞선 경향에서 벗어나는 사례는 (2022)로, 이 작품은 이번 전시의 다른 작업에 주어진 시각적 문법으로부터 눈에 띄게 벗어난다. 여기에서 주인공은 가득히 떠다니는 파스텔 색조의 꽃과 함께 무릎 높이에서 빛나고 있는 물속에 서서 광대한 3차원 공간을 차지한다. 다른 작업과 비교했을 때 이들을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작가의 구상적 미학을 드러내는 거칠고도 납작한 빛으로 표현되지는 않았다. 인물의 몸은 부분적으로 음영 처리되어 부피 및 물질 효과를 평소보다 정확히 실체에 부여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다. 다른 작품과는 달리, 이 작품의 인물들은 촉각적 연결에 성공한다. 이는 두 연인이 공유하는 꿈이자, 갈망의 상호적 표현이며, 각각 반으로 나뉜 환상이다.


이러한 이유로 는 ‘멋진 꿈’이라는 의미의 전시 제목에 적절히 부합한다. 그러나 이 꿈을 작가의 다른 그림보다 더욱 ‘현실’적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이며, 여기에서의 인물들은 왜 다른 꿈과 달리 신체적 연결에 성공하는가? 그 답은 주인공의 눈에 있다. 작가가 일반적으로 인물의 얼굴을 세부적으로 묘사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에 다른 작품에서는 그 시선을 읽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반면, 의 인물들은 물과 함께 흐르며 빛나는 꽃잎이 자아내는 초현실적 광경에 사로잡혀, 자신이 서 있는 수면을 응시하기 위해 아래를 향해 시선을 던진다. 즉, 두 인물은 마음과 정신의 연결을 나타내는 동일한 시선에 초점을 맞춘다. 여타 작품에서 사이먼 고의 인물은 얼굴의 각도와 방향에 따라 다른 곳을 응시한다. 의 여자는 위쪽으로 시선을 던져 남자가 정면을 바라보는 동안 머리 위에 매달려 있는 칼더(Calder) 스타일의 모빌을 관찰한다. 마찬가지로 에서는 여자가 천장을 바라볼 때 남자는 떨어지는 여자를 잡기 위해 팔을 벌린 채 몸에 시선을 고정한다. (2022)의 두 인물은 저글링을 하며 각자의 공에 시선을 고정하고, 인물들이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2022)에서도 모두 쌍무지개가 걸려 있는 하늘을 날며 각각 뻗은 손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사이먼 고는 모두의 내면에 존재하는 몽상가를 초대함으로써 환상을 충족시키고 의식에 의해 압도적으로 억눌려 있던 잠재적 키메라(chimera), 즉 불가능한 희망을 해방시킨다. 작가가 작업 전반에 걸쳐 예리하게 강조해온 신념으로 마음 한구석을 탐색할 때, 이러한 비전은 재현의 영역을 넘어 그의 작업을 전진하게 한다. 궁극적으로 그의 회화를 구성하는 인물들이 추구하는 연결성은 그림을 마주하며 관람자의 시선과 작가의 시선을 잇고, 감정적 공명의 강렬한 순간을 공유함으로써 완전해진다.

September 2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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