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마미술관 큐레이터 최재혁
당신에게 ‘멋진 꿈’은 무엇인가? 현실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 속에 있는 것, 그곳에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야 말로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멋진 꿈일 것이다. 어쩌면 멋진 꿈은 간절한 바람이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t Freud)는 그의 책 『꿈의 해석』에서 "꿈은 은폐되고 왜곡된 소망이 드러나는 곳이다. 그러므로 꿈의 해석을 통해 무의식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실과 꿈의 상관관계에 대해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풀이된 바는 없지만 프로이드의 이론과 우리의 경험을 통해 꿈과 현실이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추측할 수 있다. 사이먼고의 작업은 현실과 꿈 사이 그리고 왜곡된 관계망 그 어딘가에 존재한다. 작품 속 인물들은 구름과 무지개로 장식된 환상의 세계에 있지만 마냥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관계는 어색하고 무대는 빈곤하다. 꿈처럼 낭만적이지만 또한 현실적이다. 특히, 사람들의 표정과 배경의 무대를 관찰해보면 작가의 숨겨진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복제된 표정 : 갈등의 순간들
작품 속 인물들은 공통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얼굴은 대부분 무표정하다. 가늘게 그려진 눈, 생략되거나 점으로만 표현된 입으로는 표정을 읽을 수 없다. 얼굴의 방향과 시선처리가 상대방과 어긋나 있다. 대부분 남녀가 등장하는데, 배경과 행동을 통해 연인 사이임을 추측만 할 뿐이다. 〈Even In Paradise〉에서 남녀는 실타래처럼 엮여있다. 그 끝을 여성이 붙잡고 있다. 둘은 서로를 마주보는 듯 하지만 엇갈린 발걸음으로 지나치는 것 같다. 느슨한 실타래처럼 얇게 남은 관계를 부여잡는 여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Fall In〉에서는 뒤로 쓰러지는 여성과 받쳐주는 남성이 있다. 배경을 보면 구름과 별이 떠도는 무중력 상태 같지만, 이것은 가짜 무대다. 남성이 받쳐주지 않으면 여성은 떨어져버릴 것이다. 서로를 믿고 의지해야 하는 관계에서 균형과 믿음에 대한 불안정성이 읽힌다. 〈Floaters〉에서 남녀는 손을 맞잡고 물 아래를 함께 바라본다. 물에 떠있는 부유물들은 꽃가루인 듯 반짝이지만 한편 어둠이 드리워져 있다. 물어 젖어가듯 서로의 마음 또한 젖어 들 테지만 마음 한구석에 드리워진 어둠과 불안의 색채는 걷어내기 어려워 보인다. 이처럼 사이먼고의 작품에는 남녀간의 감정적 교류와 그것을 충족하지 못해 어긋나는 상황과 아이콘이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사랑은 완벽하지 않다. 그 안에는 신뢰와 믿음이 필요하고 질투와 불안의 감정이 이를 좇는다. 사이먼고의 작품이 와 닿는 이유는 아름답기만 한 사랑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이 선사하는 행복의 시간은 얇고 길어 그것을 의식하기는 쉽지 않다. 반면 갈등과 다툼의 순간은 짧지만 깊다. 얕은 사랑의 감정과 깊은 갈등의 시간 사이의 모호한 관계성을 포착하는 것이 사이먼 고 작업의 중요한 특징이다. 성숙하지 못한 관계가 만들어낸 갈등과 상처 그로인해 만들어진 사랑의 지속성에 대한 어려움을 따듯하게 표현하면서 공감을 얻는다.
연극적 무대 : 명화의 오마주
사랑과 갈등의 관계를 그렸지만 마냥 어둡거나 비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따듯하고 편안한 느낌마저 든다. 그 이유는 배경의 특별한 무대설정과 색채에 있다. 명화의 오마주가 상당부분 발견되는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작품은 〈Hold Steady〉이다. 인물의 상단에 매달린 모빌은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의 작품이다. 모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균형’이다. 칼더의 모빌은 조각들의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임에도 정확한 균형을 유지한다. 모빌은 공기의 진동에 의해 흔들려도 다시 균형을 찾는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애정의 깊이와 표현이 한쪽으로만 치우친다면 관계는 지속되기 어렵다. 작품 속 남녀는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지만 그들의 감정을 읽기는 어렵다. 둘 다 왼팔이 겹쳐진 것을 보면 손을 맞잡은 것도 아니다. 둘의 감정선도 이 머리 위 모빌처럼 균형을 이루는 것인지, 손의 방향처럼 엇갈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작가는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의 〈녹색의 연인들〉(1897)작품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샤갈의 작품에서는 남성이 여인의 품에 파묻혀 있지만 여인의 표정과 눈빛은 담담하다. 샤갈은 〈녹색의 연인들〉을 비롯하여 〈회색의 연인들〉, 〈푸른색 연인들〉과 같이 색채와 사랑을 연결한 작품을 다수 남겼다. 하지만 연인 연작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샤갈의 밝고 긍정적이며 환상적인 세계에 대한 속삭임과는 거리가 멀다. 생각해보면 사랑의 순간들이 항상 환희로 가득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민하고 고통 받는 시간이 지배적이다. 남녀 관계의 현실적인 감정을 색채에 이입한 샤갈과 사이먼고의 작업은 공통적이다. 〈Effotless〉에서 남녀는 우울감이 깃든 블루(blue)의 공간 속에 침잠해 있다. 불안의 이유는 알 수 없다. 현실적 상황, 미래에 대한 비확실성, 애정의 메마름 등 다양한 요인이 있을 것이다. 다만 작가는 상황만을 제시하면서 보는 이들이 각자의 경험을 통해 감정이입하고 반문하도록 유도한다.
마지막으로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와 같이 비극적이고 어두운 색채의 작품들에 영향을 받았다. 특히 〈키스〉(1897)에서 환희의 순간임에도 형태는 일그러지고 색채도 우울하다. 뭉크의 첫키스 대상은 유부녀였는데, 그녀의 성적 욕망 속에 숨겨진 거짓된 사랑을 알고 좌절한다. 사랑은 상대방을 욕망하게 되고 더욱 긴밀한 관계 속으로 파고들며 의심과 질투가 수반된다. 사이먼고의 소품들은 사랑의 관계 속에 어두운 심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눈 내리는 겨울밤의 이미지, 엇갈리는 표정과 시선으로 사랑의 거룩함보다는 그 관계 속에서 발생되는 어두운 면모를 포착한 것이다.
사이먼고 작품은 몽환적이고 서정적이지만 그 안에 발생되는 관계와 심리는 오히려 거칠고 불안하다. 그것을 표현한 것이 바로 표면의 거친 질감이다. 제작과정에서 캔버스의 표면에 젯소를 이용해 마티에르를 만든다. 질감을 보존하기 위해 유화가 아닌 아크릴 물감으로 얇게 여러 겹 색층을 쌓는다. 그 과정에서 일률적이지 않은 색들이 혼합되어 부드럽고 감성적인 색채가 된다. 그리고 질감은 파스텔 혹은 크레파스로 그린 듯 연출된다. 그림 안의 도상들 즉 무지개, 구름, 풍선 등의 소재가 만나 동화적 상상력을 키운다. 꿈은 달콤하고 아름답지만 현실은 거칠다. 앞서 거론한 『꿈의 해석』을 보면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 영역을 ‘의식’과 ‘무의식’으로 크게 나누었다. 그리고 중간단계에 ‘전의식’이라는 영역을 설정하였다. 전의식은 무의식의 세계에 잠재된 욕구와 본능이 의식의 세계로 밀고 나오는 것을 억제한다. 무의식의 충동과 의식의 현실 사이에 대치되는 상황을 이미지로 출력하는 것이 바로 전의식의 ‘꿈’이다. 사이먼고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현실과 꿈 사이 그 어딘가에 존재하는 전의식의 세계를 관조할 수 있다. 그리고 미숙한 사랑의 경험에 공감하고 ‘우리 사이’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