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윤정 (서정아트 선임 큐레이터)
SEOJUNG ART Senior Curator Yunjung Lee
도심을 벗어나 자연과 가까워질 때, 사람의 발 길이 닿지 않은 거리를 걸을 때, 드넓은 평야를 바라보며 어느 한 곳을 응시할 때 우리는 적막 속에서 울리는 작은 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그 울림은 마치 메아리처럼 돌아와 잠들었던 내면을 일깨워주는가 하면 더 크게 외쳐보는 안녕에 화답하듯 반복되어 퍼지곤 한다. 가끔은 그 경험이 그리워 누군가는 먼 곳을 애써 찾아가기도, 동적인 세계를 잠시 벗어나기를 갈망하며 긴 여정을 떠난다.
정영환의 작업은 그러한 여정의 시작을 알리듯 어딘가에 존재할 이상향으로 비추어진다. 위협적인 요소 하나 발견되지 않은 숲은 마치 내면의 안식을 위해 자체적으로 설정한 낙원과 같다.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느끼는 데에는 여러 요소가 작용하지만 그중에서도 일관된 수평과 수직의 비중은 크다. 특히 평면 회화 안에서 중추의 역할을 하는 직선을 발견했다면 그 어떤 현란한 색채와 역동적인 시각 요소들이 더해질 지라도 질서의 교란을 견뎌낼 힘을 가져다준다. 우리의 오감은 그렇게 스스로 안정을 찾아 균형을 맞추고, 켜켜이 쌓이는 삶의 여러 페이지 중에서 결국 올곧은 하나의 길을 맴돌아 나가고자 한다. 인적이 드물어 외딴섬처럼 보이지만 결코 적막하지 않은, 형형색색의 이파리들이 오히려 심적 평온을 주는, 정영환의 숲에 관한 이야기는 인공미와 이상향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일렬로 늘어선 크고 작은 나무와 붉고 푸른 이파리. 가지를 뻗어 숲을 이루는 정영환의 ‘Mindscape’ 시리즈는 특히 오랜 시간 작가가 이어온 작업이다. 변화무쌍한 풍경 안에서도 그 자리를 묵묵하게 지키는 나무들은 작가 자신처럼 한 방향의 길을 지향하듯 화면 중심에 우뚝 서 있다. 이들은 현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상상의 영역 어딘가를 표방하는 것처럼 비현실적인 색감과 어우러져 어렴풋한 낙원을 떠올리게 한다. 흐트러짐 없이 정갈하게 표현된 나무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익숙했던 자연의 모습이 무엇이었는지 잊게 한다. 짧은 세필을 이용해 남긴 흔적들은 중첩의 과정 안에서도 집요하게 남아 숲을 이루고, 나뭇잎의 크기, 가지의 굵기, 어둠에 가려진 영역의 대비를 결정한다. 붓 터치를 통해 옮겨 담은 선율이 주위의 다양한 소리와 공명해 마침내 웅장한 합을 이루어낸다.
어둠에 가려진 부분부터 한 층씩 쌓아가는 행위는 작가에게 사유의 대상이자 깊은 교감, 고독의 장치로 기능하지만 그렇게 완성된 작업은 구체적인 장소를 명시하지 않음으로써 내밀하고 사적인 공간, 이상화된 공간으로 완결된다.
인공미와 낙원, 자연을 대하는 태도
‘고요 속의 메아리’라는 의미를 품은 이번 전시 《Echo in the Silence》에서 정영환의 풍경화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고, 그 어떤 인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작가의 작업을 굳이 분류하자면 풍경화라는 큰 틀로 묶이지만, 풍경화의 시초를 거슬러 올라가면 동식물의 유무, 사실적 기법의 비중, 묘사의 단계 등 여러 갈래로 분화되어 왔다. 14세기 이탈리아의 벽화에서부터 시작된 풍경화가 현시대에 오기까지 많은 변화가 있었어도 그것을 규정하는 건 아마 풍경이라는 하나의 대상을 얼마나 ‘이상적인(ideal)’ 대상으로 바라보고 소화했는지에 따라 달라졌을 것이다. 자연이 지닌 숭고함은 어떤 묘사로도 재현이 불가능하기에 결국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 너머의 상상이 개입될 여지가 충분하다. 작가는 마치 계산된 형태로 완성된 인공미, 즉 인위적으로 가공된 아름다움을 통해 낙원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의미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이미 존재하는 공간 같지만 자연을 해치는 요소들로부터 동떨어져 있는, 시간이 멈춘 듯한 시점, 현실 세계에선 보기 드문 색감을 발산하는 신비의 숲에서 그려지는 메아리는 외로움보다는 오히려 경쾌함을 만드는 일과 같다. 이는 자연과 깊은 교감을 시도한 결과이면서 동시에 손끝에서 만들어진 현실적 감각을 낙원으로 이행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 교차 지점에서 궁극적으로 위로와 편안함을 제공하고자 했던 작가의 메시지는 응축되어 정영환만의 소통 방식을 담아낸다.
작가의 작업은 감각에 의해 획득한 현상이 풍경으로 발현되는 그 순간을 즉흥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수묵화와 닮은 구석이 있다. 자연에 내재한 기운을 끌어내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은 즉흥적인 필법과 연연한 춘색을 띠는 방식으로 교차되었다.
개별적인 개체는 모두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마치 특정 대상을 재현한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화면 안의 질서는 사실상 평등하게 작용한다. 한 곳을 응시하면 나머지 부분이 흐려진다는 우리의 믿음을 져버리듯, 작가는 주제를 부각함으로써 나머지 부분이 아웃 포커싱되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슬러 양감에 의한 주종 관계를 탈피했다. 이는 주제와 부주제가 설정되는 일반적인 회화적 구도를 피해 보는 이로부터 비현실적인 감각을 깨우는 작가의 의도와 같을 것이다. 그로 인해 모든 요소들은 자신의 존재를 충실하게 드러내면서 저마다 지닌 색깔을 잃지 않았다.
전시장을 덮은 울창한 숲에서 관객은 피상적으로, 그리고 막연했던 이상향을 그려볼 수 있을 테다. 실재하지 않는 곳으로부터 얻은 평온은 마치 시들지 않는 꽃처럼 마음에 남아 존재하는 곳과 존재하지 않는 곳 사이의 간격을 메워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