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윤정 (서정아트 선임 큐레이터)
SEOJUNG ART Senior Curator Yunjung Lee
시간이 지나 흐려지고 부식되는 기억을 거슬러 과거에 있는 나를 마주할 기회가 생긴다면 우리는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선형적인 관점에서는 지금의 나와 다를 것 없지만 무수한 선택의 갈림길을 지나온 현재의 나와 비교해 보면 전혀 다른 존재로 인식되는 괴리도 있을 것이다.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얻는 과정에서 보다 나은 결과를 도출하는 상상, 혹은 버렸던 선택지에 대한 아쉬움은 골몰할수록 희미한 의식으로 남는다. 더듬어 붙잡은 기억은 감정이 덧대어져 어딘가 왜곡되고 일부는 소실되어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Where did it come from? pt.1, 2》 두 개의 파트로 나누어 진행한 전시장 두 곳에 비치된 홍성준의 작품 이미지는 이전에 보여줬던 것과 다르게 한없이 가볍고 투명하다. 흐릿하게 드러난 외곽을 따라 저마다의 물질들은 바람에 의해 움직이듯 허공을 부유하고 있는 모습으로 어디에서부터 온 것인지,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없다. 작가의 이전 작업 중 레이어 시리즈가 시간을 축적하듯 겹겹으로 쌓여 각자의 색을 뽐내며 현재, 지금 여기의 인상을 포착하듯 선명하게 그려졌다면 신작에서 보이는 이미지는 중량을 최소한으로 덜어내어 빛의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미색만이 감돈다.
작가가 가벼움을 나타내기 위한 소재로 택한 시폰과 물방울은 물성 자체만으로도 가벼움을 상징하기에 적합하다. 지나온 길, 경험했던 것, 보고 느꼈던 모든 것에 대한 기록이 반드시 구체적일수록 완벽하게 재현되는 것은 아니기에 정연하게 다듬어 수사를 덧붙인 언어보다 때로는 간결한 여백이 상상을 메울 때 가닿을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것을 캔버스에 담는 일련의 과정은 역설적이게도 수작업으로 인한 노동력이 부가된다. 눈으로 포착한 색감을 되새기고 재현한 풍경을 추상적인 사유 체계로 풀어내기 위해서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는 모든 면을 측정해 직접 시각적 장치를 설계하고 연구한 것이다. 시공간의 편린을 한데 모아 가시적인 형상으로 완성된 이미지는 본인만의 추상 언어로 변환됨으로써 마치 군더더기의 해석이 붙는 것을 지양하듯 가볍게 떠올라 저 멀리 날아간다. 이는 작가의 막연한 상상을 대변하는지도 모른다. 애써 잡으려고 하는 꿈속의 한 장면이 한순간에 사라지듯, 기억에만 의존한 과거의 경험이 소멸하는 것도 찰나의 순간이다. 무형의 산물들은 지나온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리 비춰지는 일기의 또 다른 형태다.
작가의 작업실에서 보았던 ‘Touch the Sky’ (2024)는 전시장 한켠에 자리하며 가장 작지만 유일하게 은은한 빛을 감돌며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전시라는 형태로 완결된 이번의 ‘선택’이 또 다른 흔적으로, 기록으로 남은 것이다. 형광색 물감이 칠해져 어두워야 할 캔버스의 뒷면이 스스로 밝은 빛을 내도록 처리하는 독특한 방식은 작업의 이면을 엿보는 듯한 내밀한 시선 또한 가지게 한다. 자신을 돌아보는 중간 점검이 필요한 시기에 놓인 누군가에겐 무수한 선택으로 빚은 작가의 ‘현재’는 잠시 막연한 길목으로부터 구제해 준다. 최선이라 생각했던 어느 한때의 선택이 또 다른 길을 포기하게 한 것은 아닌지, 순간에 대한 기록을 다시 세워보는 냉정한 판단이 앞서는 사람도 있으리라.
전시명에서 암시하듯 ‘나를 돌아보는 중간 점검’으로 시작되었더라도, 이미 버려진 선택지에 대한 후회나 현재의 상태에 대한 불안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가는 현재 나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선택되지 않았던 것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라는 사실을 인지한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 안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물음들에 생각을 더하고, 변주를 주었던 모든 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모두 가벼움을 대변하는 다양한 물질로 변화해 선명하게 녹아들었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맑고 선명한 물방울은 마치 이 기억이 순간적일지라도, 버려진 선택지가 지금은 사라졌을지라도 기억 속에는 아름다운 형상으로 자리 잡았음을 유추하게 한다. 안개처럼 희뿌연 상태가 아닌, 오히려 맑게 갠 하늘에 떠다니는 물방울은 오히려 확신에 차 있다.
생각과 물음을 모두 붙잡을 수는 없어도 감각으로 빚은 물질은 영원히 남는다. 복합적인 감정이 뒤얽혀 만들어낸 결과는 점철되어 형상을 만들어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파편처럼 또다시 흩어질 것이다. 소멸과 생성의 이미지는 그렇게 예측 불가능한 길을 묵묵히 개척해 나감으로써 완성된다. 아리아드네의 실을 쥔 테세우스가 그랬듯 해결의 실마리와 해법을 쥐고 있으면서도 미로 안에서는 시점을 달리하지 않으면 그 끝을 알지 못한다. 전시장 안을 떠돌며 공중에 흩어진 작품 속 모티프들은 작가의 손은 거쳐 감각의 영역을 떠나 온전히 우리의 상상에 맡기기를 시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