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가 & 큐레이터 니나 음디바니
루수단 히자니쉬빌리의 창작 여정은 끊임없는 자아 탐구를 중심으로 전개한다. 자아 탐색은 마치 실마리를 풀어내며 새로운 답을 찾아나가는 지속적인 과정이며, 이는 작가가 삶을 경험하고, 모성을 이해하고, 자식을 성장시키며, 그들을 세상에 보내고 또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는 무한한 과정의 일부이다. 이 중심에는 작가의 개인적인 연속성, 방어 기제, 약점 그리고 그의 약점과 신비로운 컬트적 요소에 대한 분석이 있다.
이 과정에서 히자니쉬빌리는 성별에 따른 기대치에 대항하며, 즉각적인 유연성과 폭넓은 스펙트럼의 능력과 함께 다양한 정체성을 유연하게 넘나들며 놀라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녀의 자아가 더 강한 여성성을 가지게 되면서 그녀의 작품 역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의 초기 회화와 콜라주 작품에서는 내전과 그 후 불안정한 시간을 겪으며 러시아에 의해 영토를 잃게 된 조지아의 혼란스러운 시기를 상징적으로 애도하며 신체 훼손에 대한 그녀의 고뇌가 담겨 있다. 2022년 가을 베를린에서 연 개인전 에서는 ‘인간’이라는 야수에 내재한 공격적인 본성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보여주었다면, 서울에서 가진 <벨벳 아머(The Velvet Armor)>전에서는 색채의 조화를 만드는 데 있어 그녀의 숙련된 능력을 통해 '보존'이라는 주제를 미묘하고도 상징적인 방식으로 탐구했다.
구소련 시대 이후 조지아에서 태어난 히자니쉬빌리의 기억은 이 지역의 굴곡진 역사와 깊은 연관이 있다. 조지아는 그리스 ‘아르고네’, 괴물 ‘미노타우로스’, 매혹적인 마법사 ‘메데이아’ 등 수많은 전설이 탄생한 고대 소국이다. 중세 조지아는 에메랄드빛을 띤 산속에 자리한 웅장한 성당과, 작지만 엄숙한 교회에 고요한 프레스코화를 남겨, 이러한 품격 있는 시각적인 문화에 대한 족적을 남겼다. 또 19세기에는 유럽과 긴밀한 문화적 교류가 있었는데, 자국의 많은 예술가, 작가, 지식인이 당시의 지적 활동 중심지인 유럽에서 진보적인 예술과 시각적인 개념을 공부하고, 이를 다시 조지아로 가져오기도 했다. 그러나 1921년 소련 군의 조지아 침공 이후, 이러한 활동은 완전히 중단되었다. ‘철의 장막(The Iron Curtain)’이 무너지면서 서구권과의 교류가 단절됐고, 그 때문에 트빌리시(Tbilisi)의 활발했던 지성의 장은 이후 70년간 잠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조지아는 공식적, 비공식적인 예술 활동을 통해 소련 문화에 맞서 국가 정체성을 지켜나갔다. 현재는 다시 전 세계에 탁월한 창의력을 지닌 인물을 배출하고 있다.
하지만 히자니쉬빌리의 미술사적 계통은 조지아의 혈통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트빌리시 예술 아카데미(Tbilisi Academy of the Arts)의 뛰어난 화가이자 수필가인 에스마 오니아니(Esma Oniani, 1938-1999)의 제자였던 그녀의 작품은 조지아 예술계 속 주를 이루는 민족적 특징,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영향력, 혹은 구소련 시대의 대안적인 지하 예술 경향을 따르지 않는다. 그녀의 작품은 오히려 네오 라우쉬(Neo Rauch)와 로사 로이(Rosa Loy)와 같은 라이프치히(Leipzig)의 거장들, 북유럽의 표현주의(Northern Expressionism), 파리의 야수파(Fauvism), 바르티 케르(Bharti Kher) 혹은 아드리안 게니(Adrian Ghenie) 등과 같은 현대 신비주의적 서사를 탐구하는 근현대미술 사조와 훨씬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는 신디지털화(Neo Digitalization)와의 뚜렷한 간극을 드러낸다. 디지털화한 세상에서 우리는 자신을 더 잘 알고 더 행복해지기 위해 기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이 속에서 진정한 예술은 우리 자신의 취약한 면모를 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히자니쉬빌리가 추구하는 자기 인식의 본질이다.
이렇듯 끊임없는 자기 성찰의 과정을 통해 히자니쉬빌리는 항상 현 순간이자 일시적인 존재 상태에 대해 주목해왔다. 그녀는 국가적이고 민족적 기억을 한 번에 오직 한 사람씩만이 지켜낼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이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에서 선보인 작품은 모두 이러한 보존의 원동력을 담고 있는데, 히자니쉬빌리의 단어, 색상, 문구, 제스처가 그녀의 부적이자 방법으로 작동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학평론가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가 1979년에 출판한 유명한 저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서는 “일부 독특한 물체들은 마음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물체들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허구적인 현실이다.”라고 서술했다. 히자니쉬빌리의 아바타 역시 외부의 상처뿐만 아니라 내부의 상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갑옷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갑옷 중 일부는 실체가 있지만, 또 다른 일부는 함축적이며, 작가를 삶에서 오는 혼돈으로부터 보호하고 있다.
히자니쉬빌리의 작품에서는 작가 본인의 목소리가 강하게 드러난다. 그녀는 해롤드 블룸(Harold Bloom)이 언급한 '영향의 불안'을 오래전에 극복했다고 볼 수 있다. 동유럽을 넘어 세계적인 현대 미술사적 맥락에서 자신의 위치에 집중하여 그녀만의 회화적이며 개인적인 내러티브를 만들어가고 있다. 히자니쉬빌리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연구 중심의 작가는 아니었다. 그녀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세계 문학,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 그리고 이 두 가지로부터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다. 아마 이것이 히자니쉬빌리의 작품이 언제나 신실한 깊이를 통해 감동을 주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은 또한 영화적이기도 하다, 이는 루이 부뉴엘(Luis Buñuel, 1900-1983)과 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Alejandro Jodorowsky, b.1929)와 같은 아트 하우스 영화감독들과 깊은 연관성을 반영하는데, 이 두 감독은 각각 자신만의 규칙을 갖는 논리적 현실의 비논리적 버전을 창조한 인물이다. 히자니쉬빌리 역시 이들의 방법론을 회화에 접목했다. “완전한 치유를 위해서는 우리의 이성(reason)에게 꿈의 언어를 가르쳐야 한다.” 히자니쉬빌리가 가슴에 담고 있는 칠레계 프랑스 초현실주의 영화감독 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Alejandro Jodorowsky)의 말이다.
의 강렬하고 사이키델릭한 아름다움에 도취해 속지 않길 바란다. 여기 파올로 베로네세(Paolo Veronese)가 묘사한 베네치아의 화려한 연회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섬세한 주름 뒤에 상처를 쓸어내리고 있는 손이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을 방문한 히자니쉬빌리는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국 초상화를 살펴보던 중 신체에서 손이 무방비 상태로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에 가장 친밀하지만 취약한 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작품에서 손은 자신의 고결함을 지키기 위해 뻗어 있는데, 이는 기독교에서 예수의 기적적인 부활을 믿지 않고 그의 상처를 만지려던 사도 도마의 행동과 도상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이 작품 속 여성은 그녀 자신의 무결하고 온전함을 살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히자니쉬빌리는 일관적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생태계를 구축하고, 그를 해석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강인하고 자립적이며 독립적인 여성상을 작품으로 전달해왔다.
바닥이 없는 우물에 갇힌 세 인물이 주인공인 에서 이 상상 속의 방어 기제는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작품에서 우물은 신성한 의미를 담고 있는데, 작가에게는 모태, 침묵, 비밀, 그리고 새로운 생명의 성장을 상징하는 비유적 장치이기도 하다. 여기에 등장하는 세 여성들은 균형 의식을 수행하는데, 이는 작가가 자신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이때 패턴, 실재하는 인물, 그리고 영적 신비가 드러나는 꿈의 풍경과 극적인 연출이 상호 작용한다. 마치 최면에 걸린 듯 일렬로 세워진 형상들은 기독교의 삼위일체, 그리스 신화의 미의 세 여신(The Three Graces), 혹은 보이지 않는 가위로 명줄을 자를 태세를 갖춘 운명의 세 여신(The Destiny Goddesses)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처럼 히자니쉬빌리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인류 문명의 역사 전체에 상징적으로 녹여낸다.
역사와 예술적 비전의 상호작용은 의 환각적인 화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화면의 중심에는 코르셋을 입은 야수가 가녀리고 연약한 여인들을 품에 안고 천체들로 둘러싸인 달의 분화구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그 주변은 구덩이로 가득 차 있으며, 여기에 쉽게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털로 몸을 보호하고 있다. 한편, 이 짐승의 안쪽에는 보호 기구 뒤에는 분홍색의 고운 가운을 입고 있는 부드러운 존재가 살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의 이중성은 작은 빛, 진정성의 불꽃, 내면의 섬 등이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평화롭게 존재하기 위해 존재한다. 야수와 여인들의 관계에서 비롯한 복잡한 이중성은 우리 자신의 이중성과 자아 중심의 행동에서 취약한 무의식적인 성찰 단계로 전환하는 우리의 표면을 반영한다.
《일리아드》 제18장에서 헤파이스토스 신이 아킬레스를 위해 만든 방패는 산과 해변뿐만 아니라 그리스 전체의 풍경과 사람들, 그리고 이들의 삶을 잘 보여준다. 이것의 은유는 바로 히자니쉬빌리의 작품에 내재한 철학이다. 그녀의 '갑옷'은 국가와 개인의 정체성에 담긴 힘과 함께 빛나고 그녀의 힘을 통해 빛을 발한다. 그래서 히자니쉬빌리는 본질적으로 현대미술 작가이며, 우리 역시 작가의 작품을 통해 문화적 유산에 대한 성찰에까지 이를 수 있다.